(78강) 히브리서 13:9-15 입술의 열매

<본문>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을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게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서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9-15)

<설교>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수님이 가신 길에 동참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의지의 결과가 아닙니다.

강제가 아니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동참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본래의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된 자로서 예수님이 가신 길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생명이며 영원이심을 알았기에 예수님이 가신 길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길로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등산로처럼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올라가도 결국 정상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가 각기 가는 길은 달라도 추구하는 것은 같으며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말들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되심과 십자가에 피 흘리심과 은혜를 철저하게 짓밟는 사단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만이 생명에 소속된 자로서 영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를 떠나 살 수 없는 자이며,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에 소망을 두지도 않을 자이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 다른 것을 힘으로 삼지 않을 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교훈은 그리스도만을 말하고 있으며, 그 교훈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악한 심령을 다스리고 고치면서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하고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삶으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교훈이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세상의 것을 약속 하거나, 신앙을 언급하며 인간의 열심을 북돋우어 십자가의 피의 공로가 아닌 인간의 열심을 공로로 내세우고 그 공로에 대한 대가를 하나님이 지불하시는 것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다른 교훈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진리로 위장한 거짓된 교훈들이 난무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진리만을 고집하고 진리만을 소망하는 자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굳게 세워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는 것은, 진리를 빙자한 여러 다른 교훈이 있다는 것이고 그 교훈들에게 사람들의 마음이 끌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른 교훈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굳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식물로써 행한다는 것은 식물을 먹고 먹지 않는 것으로 신앙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실천을 신앙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행함에 의미를 두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행함에 의미를 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의롭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실천함으로써 의롭다 여김을 받고 복을 받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교훈에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은혜에 붙들려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것으로 마음이 채워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행함이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험이나 체험들에게 마음이 끌리지를 않게 됩니다. 그 어떤 경험도 체험도 나를 생명으로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어떤 경우에도 은혜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누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안수 받았더니 병이 나았더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병이 낫고 싶은 욕구의 자연적인 움직임입니다. 병든 자가 병이 낫고 싶은 욕구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불치의 병이 무슨 방법으로 나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천국에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병 나은 것이 믿음의 증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된 놀라운 기적에 머물러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기적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죄에서 구원된 기적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적이 기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아닌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성령이 왜 오셔야 합니까? 왜 우리를 새롭게 하셔야 합니까? 성령으로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옛것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기에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은총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도 기적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착함도 의로움도 모두 부정하고 오직 자신을 사망에 처한 자로만 보면서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피 외의 모든 것은 다른 교훈으로 말하며 오직 은혜로써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기에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10-11절을 보면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고 말합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물의 고기는 제사장이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6:30절에서는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고 말합니다. 일 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해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때 바쳐진 제물의 고기는 제사장이 먹지 못하고 영문 밖에서 불사르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속죄 제물의 완전한 희생으로 주어진 은총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즉 영문 안의 세계와 영문 밖의 세계가 제물의 희생으로 구별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문 밖의 세계는 제물의 완전한 희생을 믿는 믿음의 세계인 반면에 영문 안의 세계는 제물의 완전한 희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제사라는 의식과 인간의 행함을 바라보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병 고침도 율법도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피의 은혜에 보태어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다른 교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인간의 행함과 아무 연관이 없으며 순전하게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실천도 해야 하고 성령을 받아서 병도 고쳐야 하고 기도해서 응답도 받아야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은혜아래 있는 증거라고 가르치는 모든 것이 다른 교훈입니다. 이처럼 진리는 참으로 깔끔하며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분을 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기독교는 인간으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믿음 자체만으로는 불안해하며 보이는 것을 동원하여 믿음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한 보증이 되는 십자가 사건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보다 병 나은 체험에 더 믿음이 가고, 응답 받은 체험을 더 확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의 결단과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굳게 함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찬미의 제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내신 긍휼과 사랑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무가치한 존재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뿐임을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찬미의 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는 신자의 입술에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