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강)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본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설교>

사도는 10: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는 말을 하고 이어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여러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흔히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서점에 가면 11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을 영웅시하고 그들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11장은 그처럼 어떤 인물들의 믿음을 칭송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대해 분명히 가져야 할 중심적 사고는 믿음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믿음 스스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믿음을 갖기를 결정해서 믿음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살려는 의지가 있어서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 자체가 능력이기에 신자가 믿음에 의해 믿음에 붙들려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신자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 의지에 의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외치는 것이고, 부지런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도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에 대한 주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10:32-39절에서 믿음에 대해 얘기를 한 다음 11장의 믿음의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의인들을 말함으로써 믿음이 과연 신자를 어떤 삶으로 인도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한 것과 연결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1장에서 인간에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즉 믿음이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이끄는가에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현대 교회가 말하고 있는 믿음이 어떤 면에서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합니다. 바라는 것, 보지 못하는 것, 이 모두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신자가 바라는 것, 그럼에도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을 천국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천국을 소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실상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무엇으로 천국의 증거로 삼겠습니까? 사도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로 천국의 실상, 또는 증거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증거로 삼아 천국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서 확인되어진 것만 믿고자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 역시 믿음입니다. 물론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차원이 아니라 영으로써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은 증명되지 아니한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중심은 증명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과학적 증명이 없어도 얼마든지 믿게 되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음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2절을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선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바라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증거를 얻었습니다. 선진들이 바라면서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선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 약속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선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어떤 증거물이 있었습니까? 무슨 증명을 얻은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있었을 뿐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어떤 증거물을 보이심으로써 믿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믿음이 선진들에게는 약속의 증거물이었고, 믿음에 의해 약속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는 자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대로 여러분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 무엇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증거입니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지 않는 이유는 뻔합니다. 눈으로 본적이 없고,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살아 계시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종종 조롱하듯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디 한번 보여 봐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대해 난감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즉 믿음 자체가 증거로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대로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증명 하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믿음은 남에게 보여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은 나를 높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뜻합니다. 이 우주 만물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타난 것, 즉 세상에 존재하는 뭔가를 이용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오직 말씀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타난 것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 그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사도의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증거로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신자는 보이는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함이 부족하다고 해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세상에 대해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갖 과학을 다 동원한 하나님의 창조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믿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믿음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과 세상은 과학은 통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없는 세상은 믿음이 있는 세계와 단절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이는 것으로 증거되고,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믿음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증거하고 증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보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말씀의 실상으로 증거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기 위해 뭘 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위를 통해서 확신을 갖고자 하고, 어떤 신비한 사건들을 통해서 확인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믿음은 오히려 보이는 나의 행동을 신뢰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이 하신 일만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