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주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히브리서 1:6-9)
<설교>
여러분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영원한 것을 원하십니까? 이론적으로는 영원한 것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쩌면 여러분의 마음은 비록 한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존재하는데 힘이 되는 것을 더욱 더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이끌리는지 생각해 보면 신앙은 참으로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더욱 더 우리 인생에 참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가를 배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하늘의 지혜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는 그가 진정한 신자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는 천사보다 예수님이 높으시다는 어찌 보면 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높이 여김을 받으신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주어진 아름다운 이름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세상에서 오셔서 행하시는 일이 뛰어난 일이었기에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의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의를 따르는 신자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높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더 이상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믿음의 가치를 모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전히 예수님의 높으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시편 104: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104편의 내용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계의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4절에서 말씀하는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라는 말씀에서도 바람도 화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쓰여지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7절의 말씀은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8-9절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주의 보좌에 거하시는 영영하신 분으로 언급하면서 천사와 본질적으로 다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셨습니까? 오늘 우리들에게서는 어떤 대우를 받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에게 뭘 어떻게 해주시는가의 문제에 골몰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계시든 말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 아닙니까? 그리고 관심 두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서신을 쓰고 있는 기자는 모든 관심을 예수님께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자의 이러한 얘기에 함께 어울리고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관심과 초점을 예수님께 둔 신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런 내용들이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성경이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관심이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즉 관심이 없는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시는 이유는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신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은 오직 예수님일 뿐입니다.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즐거움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의와 불법은 무엇입니까?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불법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하늘의 의와 불법은 우리의 양심이나 윤리와는 상관이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법이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실현하기를 더 즐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처럼 불법한 자로 사는 우리의 불법을 가리기 위해서 의로우신 분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에 있어서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불법은 곧 자신의 죄인 됨을 생각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원하는 바를 성취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즐거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모든 동류보다 승하게 하신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에게 모든 관심두고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하나님의 즐거움으로 내밀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착한 행위를 보시고 즐거워하신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 행위를 보고 즐거워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 행위 자체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행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이 보여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즐거움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께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즐거움이 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즐거움보다는 나의 즐거움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즉 나의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높이시는 아들을 아는 것보다는 내가 높여지고 세상에서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하고,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의 죄악을 해결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니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했다고 선언하는데 진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니요? 진리로 자유케 된 적이 없어서 진리를 소유한 기쁨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죄의 해결을 맛보지 못해서 예수님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두는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한 은총의 기쁨을 맛본 자입니다. 은총을 맛보았기에 예수님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총에 더욱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여러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여러분의 행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