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3:6-11 아브넬의 교만

<본문>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

<설교>

인간에게 있어서 힘과 권세는 언제나 큰 유혹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힘과 권세만 있다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힘과 권세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힘과 권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으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영생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세상에서 힘과 권세가 되지 못함을 알기에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힘과 권세가 되어주는 것을 향해 날마다 달려가는 삶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은 모두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유혹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누리지를 못한 자신이 못나 보이고 그것이 마치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은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이스보셋이 아브넬이 아비의 첩을 통간한 일로 인해 책망을 합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은 비난한 것은 단순히 사울의 첩을 통간하였다는 윤리적인 면이 아니라 왕의 첩을 차지함으로써 왕의 권세보다 자신이 더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하가 왕의 첩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왕의 첩을 차지한다는 것은 아브넬의 권세가 왕도 무시할 만큼 커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보셋도 아브넬의 커진 권세를 염두에 두고 비난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에 대해 분히 여기면서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8절)는 말을 합니다.

아브넬의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네가 지금 다윗에게 죽기 않고 왕이 되어 있는 것은 모두 내 덕분인데 그것을 모르고 까부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2:8-9절을 보면 이스보셋은 아브넬에 의해서 왕위에 올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보셋의 입장에서 보면 아브넬은 공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왕위에 세운 공신이라 할지라도 왕의 권세에 도전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을 경계하기 위해 그의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넬 편에서 보면 다윗에게 붙들리면 죽어야 할 사람을 왕으로 삼아 주었는데 그 공을 모르고 자신의 행위를 문제 삼는 이스보셋이 괘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아브넬은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한 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9절)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한 내용은 10절에 기록된 대로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기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러한 맹세를 하신 내용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약속이 아브넬이 지어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아브넬의 교만입니다. 아브넬의 교만이 무엇인가는 9절의 내용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아브넬은 ‘여호와께서 맹세한 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라는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것을 이루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이 죽지 않고 왕이 된 것도 모두 자신의 공로라고 말합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같은 것은 당장 죽여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힘과 권세를 가진 자의 사고방식이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 아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까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물을 흘러가게 할 수도 없고 들에 꽃 한 송이 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세상의 힘과 권세라는 것은 하찮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힘과 권세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다면 내 위에 힘있는 분이 존재하심을 알아야 하고, 권세가 있다면 내 위에 권세 있는 분이 존재하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한다 해도 그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워서 하신 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내 공로로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겸손이며 이 겸손이 있는 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잊지를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예배당에 어떤 물품을 기증했다고 합시다. 자연히 다른 사람보다는 그 물품에 대해 아끼려는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행함이 담겨 있는 물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헌물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기증한 물품에 대한 애착으로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아브넬과 같은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삼을 주관하심을 잊어버린 채 마치 내 힘으로 사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구제 했다면 ‘하나님이 나의 손을 통해서 가난한 자의 쓸 것을 나누게 하셨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내가 구제했다’는 생각에 빠진다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가난한 자의 쓸 것을 공급하기 위해 내 손에 맡긴 것이라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때문에 구제를 했을 때 그 행위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내가 너에게 구제를 했으니까 너는 나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악한 생각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사단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내 수중에 있는 것으로 누군가를 도왔다 할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세워서 하신 일이라는 이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면 안됩니다. 이 생각이 여러분을 겸손에 머물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자의 겸손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에 자연히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께 이러한 열매가 보이는지를 목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여러분이 누군가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라는 생각에 대한 반응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너에게 잘해 줬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섭섭한 마음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사실 이것까지 초월해야 할 존재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께 섭섭한 행동을 한다면 가장 먼저 그 배후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세워서 이렇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 이것을 생각한다면 자연히 섭섭함은 덮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한 것은 있다 할지라도 그 손은 하나님께 주장된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생각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넬에게는 이러한 겸손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자신의 힘과 권세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사울의 집을 다윗에게 주는 것까지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있습니까? 물론 돈이면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돈 역시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돈은 하나님에 의해 여러분께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노동을 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직장을 다니게 하셔서 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이만큼 벌었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건강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신자는 결코 ‘내가 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는 겸손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