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강) 사무엘하 15:24-29 다윗과 언약궤

<본문>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유하니라(사무엘하 15:24-29)

<설교>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것이 자연적 반응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만이 보일 뿐이고, 모든 관심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는 어떤 상황이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배후에 계신 상황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고통과 실패든 아니면 성공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을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찾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과 길을 모색할 것이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정성과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행위로 나아가게 될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과연 그러한 것을 신앙으로 인정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문의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자신이 의도한 대로 끌어 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맡긴 채 하나님이 하신 대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앙이며 다윗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의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라는 말씀을 보면 다윗이 성에서 도망을 칠 때 제사장인 사독과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언약궤를 메어 나와 다윗과 함께 하려고 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은 다윗을 지지했었던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해 본다면 사독과 레위인은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 메어 나왔다기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상징물인 언약궤를 다윗에게 둠으로써 모든 상황을 다윗에게 유리하게 하고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만약 다윗이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힘을 썼다면 언약궤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분명 향후 정국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25절에서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는 말을 함으로써 언약궤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언약궤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이 언약궤를 성으로 돌려보내는 그 마음을 생각해 봄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마음이 어때야 하는가를 배워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할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것은 일단 언약궤를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일쑤입니다. 자신을 버리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을 세상에서 굳게 세우기 위한 기도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윗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독과 레위인이 언약궤를 메어 온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언약궤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것은 언약궤가 자신과 함께 하고 안하고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행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5절 중간에 보면 다윗은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는 말을 합니다. 다윗의 이 말은 언약궤가 자신과 함께 한다고 해서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자신을 언약궤가 있는 성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언약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궤를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이것이야 말로 진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신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다시 성으로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하고는 하나님께 달린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성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26절에서 다윗은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는 말을 합니다. 다윗의 이 말은 참으로 대단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포기해 버린 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하신다면 그 말씀대로 자신에게 행하시라고 말씀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만약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든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기를 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라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라면 그대로 행하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만 높이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신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는 무엇일까요? 우린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저 깊은 내막까지 그 선하신 속 뜻 까지 알 수 없는 생각이 얕은 존재입니다.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둘러싸인 우리들의 소견으로 어찌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믿을 것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사랑이시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으로 걸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라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상황임을 안다면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설사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면 내게 행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신자가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모든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탐욕일 뿐입니다. 그러한 인도는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즉 자신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억지일 뿐이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여러분이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종교 행위, 즉 예배, 기도, 헌금, 성경 읽기 등등의 행위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언약궤를 앞세워 하나님을 도움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러한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린 너무 쉽게 하나님이 나 자신을 기뻐해 주실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만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사실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에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옵소서 하리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돌이켜 생각한다면 분명 자신은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입을 자격이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않으심으로 성에서 쫓겨나 평생 나그네로 유리하며 산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함이라면 그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신자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겸손이 없습니다. 죄인이라 하면서 자신의 악함을 보지 않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죄인이라 하면서도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한대로 되어지기를 원하는 욕심을 벗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쥐고 있으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다윗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것에서 신앙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어 지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되어 지는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불안과 근심이 아닌 믿음과 평안 속에 살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내 입장에서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함을 이루시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