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사무엘하 7:1-9 다윗과 하나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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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사무엘하 7:1-9)

<설교>

하나님을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습성인가 봅니다. 하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생각에 맞춰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에 일치된 모습으로 존재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을 주의 깊이 읽으신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자기중심과 자기 편의주의에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해서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편의주의에서 벗어나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무너지고 전혀 새로운 시각과 지혜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각을 고치시고, 이삭의 생각을 고치시고, 야곱의 생각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그 일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그 생각을 고치시기 위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많은 목사들에 의해 교인들에게 소위 성전 건축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편의주의적인 생각에 의한 해석일 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본문은 성전 건축을 독려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성전에 대한 다윗의 생각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정반대의 생각으로 본문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즉 하나님이 다윗의 모든 대적을 물리치시고 평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1절의 이 내용은 읽기에 따라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지만 2절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뭔가 생각해 볼 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은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이 자신이 거하는 궁에 비해 하나님의 궤가 볼품없는 천막에 거하고 있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1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다윗은 하나님이 베푸신 것에 비해 자신은 하나님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궁도 주시고, 대적도 물리치시고, 평안도 주셨는데 자신은 하나님의 궤를 겨우 천막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쩌면 하나님을 잘 모셔야 지금의 평안이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이런 마음이 갸륵해 보입니까? 자신의 평안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궤가 천막에 거하고 있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정성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정성으로 말하면서 교인들에게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강요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좋은 집을 주셨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을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없게 놔둘 것인가?’라는 책망 아닌 책망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심지어는 자신의 집을 팔아 예배당 건축비로 헌금하는 일까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아주 좋은 믿음으로 치부되어 칭송되고 있는 것이 많은 현대 교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좋게 보셨을까요? 7절을 보면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내용은 분명 하나님의 집에 대한 다윗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을 명하신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비록 하나님이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지어 바치려고 한 것이 정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바를 따라 살아갈 뿐, 인간이 알아서 스스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집이 필요하십니까? 물론 나중에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었지만 그때도 하나님께 집이 필요해서 짓게 하신 것이 아니라 참된 성전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짓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공간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집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무슨 집이 필요합니까? 집은 다만 인간에게 필요할 뿐입니다. 집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욕심이 하나님도 집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궤를 모실 집을 걱정하는 다윗의 마음은 아직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인가를 알지 못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중점적인 생각과 편의주의에서 나온 생각인 것입니다. 좋은 궁에 머무는 것이 너무 좋게 여겨졌기에 하나님의 궤를 천막에 모신 것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자신이 거하는 집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궤가 어떤 곳에 모셔져 있는가에 대해서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배당을 짓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자신의 집을 소유하기를 원하고, 더욱 좋고 큰 집을 갈망하는 마음과 무관하지 않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소유의 집이 있어야 한다는 열망이나, 내 소유의 예배당이 있어야 한다는 열망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집을 좋은 것으로 지어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의 열심과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님을 웃사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보여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같은 생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의 고집은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성을 보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주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분명 하나님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생각을 앞세우면서 내 생각이 옳으니까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 지을 뿐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다만 중요일 뿐입니다. 세상의 종교, 즉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면 인간의 생각을 신의 생각으로 합일화 시켜 놓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집과 장막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집은 고정된 것이지만 장막, 회막은 수시로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장막, 회막은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 함께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6절의 내용은 하나님은 어느 한곳에 고정된 분이 아니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 함께 행하신 하나님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 함께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정된 집에 머무시면서 단지 지시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함께 하시고 직접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나아온 것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잘 실천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함께 하시고 일하신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집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무지는 오늘 현대 교회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면서 예배당을 잘 짓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인줄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어리석음이요 무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고정된 건물에 모시려고 하는 잘못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잘 지은 건물에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새롭게 지으신 자기 백성의 새 마음에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은 예배당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의 새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그 마음이 곧 천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예배당이 하나님이 계신다면 예배당이 곧 천국이라는 논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곧 성전이고 신자 개개인의 몸이 곧 성전입니다(고전 3:1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있게 된 것으로 감사하고 그것을 존귀히 여겨야지 예배당을 존귀히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당 짓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집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조건 더 크고 좋은 건물을 원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라 봅니다. 예배당은 예배드리기 위한 공간일 뿐입니다.

은석교회 여러분은 예배당에 대한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전부임을 잊지 않고 날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나에게 오신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에는 게을리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예배당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웃으실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배당은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일 뿐 하나님께 필요한 공간이 아닙니다. 예배당의 크기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이 증거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섬김을 의지하는 여러분의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거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