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사무엘하 5:1-5 하나님의 때

<본문>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사무엘하 5;1-5)

<설교>

아브넬이 요압의 복수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이스보셋은 기울어져 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안위를 꾀하던 레갑과 바아나의 형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으로 세울만한 사람이 없게 됩니다. 비록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4:4절에서 밝힌 대로 그는 절뚝발이였기에 왕으로 추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다윗을 왕으로 섬기기로 작정을 하고 헤브론에 거하던 다윗을 찾아와 자신들의 왕으로 삼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비록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아브넬만 생존해 있었어도 다윗은 왕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해 볼 때 만약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행동했겠습니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통치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면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일에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손으로 아브넬과 이스보셋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수 있고, 아브넬을 죽인 요압의 행동이나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의 형제의 행동에 대해서도 크게 마음 들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요압을 저주하고, 레갑과 바아나 형제를 죽인 것을 보면 다윗에게는 스스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지 다윗의 야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께 ‘너를 이 나라의 왕으로 세우겠다’는 약속을 하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아마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왕이 될 몸이다’라는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왕이 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힘을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왕 하나님의 약속까지 있는 마당에 뭘 주저하겠습니까? 아브넬과 이스보셋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자신은 왕이 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 맡긴 자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약속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 볼 수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들이 생기지를 않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사라의 여종인 하갈의 몸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이 분명 성취하신다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왕으로 세우신다는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대한 열망도 관심도 없이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했던 다윗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윗은 이 때를 위해서 일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을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한 욕망으로 어떤 계책을 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가만히 있었는데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게 되고 결국 온 이스라엘의 지파가 다윗에게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4-5절을 보면 “다윗이 삼십 세에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약속받은 다윗이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만을 다스리면서 나머지 다른 지파를 다스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다윗이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마음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을 뿐입니다. 때문에 사울을 죽인 아말렉 사람에 대해서도,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 형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사적인 유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비록 다윗이 왕이 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윗은 전혀 그런 의미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면서도 아주 어려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된다’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신자로서는 당연한 것이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된다’는 문제입니다. 관심을 자신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지는 것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나를 높이고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26절에 보면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는 말씀을 합니다. 사람은 구원을 위해 뭔가 해야 하는 존재로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열심히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가운데서 흔들림이 없는 것이야 말로 믿음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믿음의 삶에서 고민하고 낙심하고 견디지를 못해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래도 내가 신자일까?‘ 이런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조건이 되어서 신자된 것이 아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설령 교리적인 차원에서는 안다고 하더라도 ’신자가 되었으니까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신자다운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음으로서 결국 자신의 신자 됨을 자신의 열심에서 찾으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는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를 힘쓰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심을 믿고 살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열심히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왕위에 대한 다윗의 모습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에는 ‘때가 찬 경륜’(엡 1;9)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때를 따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때를 따라 일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만 기다릴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내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것이 30세의 일이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38세쯤 되던 해의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지 근 20년 만에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오랜 세월 속에서 다윗이 보여준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는 것입니다.

2절 뒷부분을 보면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을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때’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때’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의지의 결과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 병들고 건강해지는 것 이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의해 때를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도 때를 따라 되어진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다윗이 왕이 되는 쪽으로 이루어져 간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성취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성취하기 위한 한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말씀의 성취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가셨다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잘못됨도 실수도 없는 완벽한 말씀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는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이 역시 때가 차면 하나님의 경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에는 절대로 포기도 중지도 변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분명코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말씀대로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신자는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로 살아갈 뿐 자신의 포부나 목적을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지금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따라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하게 ‘지금 고생해도 언젠가는 편해지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헛된 희망일 뿐입니다. 때가 있다는 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형편과 환경을 내가 원한대로 이룰 수도 바꿀 수도 없음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해나가시는 일임을 알고 지금의 자리에서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믿음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차면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눈물을 씻기시고 위로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왕노릇 하게 하실 것입니다(계 22:5).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듯 여러분을 하늘나라에서 왕노릇 하게 하실 그 때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이루어지면 진정한 승리자가 누구인가가 판명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으로 인해 낙심하지도 교만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벗어나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기에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있어서 조급해 하지 마시고 다만 하나님 바라보기를 힘쓰십시오. 세상에서 뭔가 되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기보다는 다윗처럼 오로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힘쓰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때를 살아가는 신자의 본분입니다.